아산화질소(nitrous oxide)는 수술 및 치과 시술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흡입 마취제(마취가스)이지만 간혹 일부 사람들에게는 오락 목적으로 오용되어 왔다. 국내에서는 '해피-벌룬'이라는 별칭으로 클럽에서 성행하여 젊은 세대에게 쉽게 노출되고 있다[
1]. 아산화질소는 신경 독성을 유발할 수 있지만 그 독성이나 남용의 부작용에 대한 인식은 부족하다[
2]. 국내에서 아산화질소 남용과 연관된 말초신경병증 또는 척수병증이 보고된 바 있으나[
1-
3] 최근까지 이의 오남용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. 저자들은 국내에서 아산화질소 남용 후 발생한 다발신경병증이 재발한 증례를 경험하였기에 이를 문헌고찰과 함께 보고하는 바이다.
증례
20세 여자가 양 다리에 힘이 없어 걷기 힘들다고 응급실을 방문하였다. 증상은 2달 전에 시작되고 상대적으로 빠르게 악화되었다. 특이한 과거력이나 가족력은 없었고 사회적 음주자였으며 1갑년의 흡연력이 있었다. 7개월 전 미용수술을 받았고 1개월 전 급성 신우신염으로 항생제를 복용한 이력이 있었으나, 장기적으로 복용하는 약제는 없었다. 추가 문진을 통해 환자는 5개월 전부터 일주일에 2-4일, 평균 30분에서 1시간 동안 ‘해피-벌룬’을 흡입하였고 1달 전부터는 한 번에 2시간 이상으로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을 흡입하였음을 확인하였다.
신경계진찰에서 의식은 명료하였고 뇌신경기능 이상은 없었다. 근력 검사에서 양측 발목 이하에서 Medical Research Council (MRC) 등급 4 이하로 근력이 감소되어 있었으며 원위부로 갈수록 근력 저하가 심하였다. 상체의 근력은 정상이었고 깊은힘줄반사는 양측 이두근, 무릎, 발목에서 저하되어 있었다. 감각 검사에서는 가벼운 촉각, 온도, 통증 및 진동 감각이 양측 무릎 아래에서 대칭적으로 감소되어 있었다. 근섬유다발수축(fasciculation)이나 병적 반사는 없었다.
혈액 검사 및 화학 검사는 정상이었고, 혈청 비타민 B12 농도도 382 pg/mL (정상 211-911 pg/mL)로 정상이었다. 그러나 혈청 호모시스테인(homocysteine) 및 소변 메틸말론산 (methylmalonic acid)은 각각 29.27 μmol/L (정상 5.08-15.39 μmol/L), 6.27 mg/g/Cr (정상 0-3.70 mg/g/Cr)로 크게 증가되어 있었다. 항강글리오사이드 항체(anti-ganglioside antibody), 항벽세포 항체(anti-parietal cell antibody), 항내인자 항체 (anti-intrinsic factor antibody), 항핵 항체(fluorescent antinuclear antibody), 항카디오리핀 항체, p-anti-neutrophil cytoplasmic antibody (ANCA), c-ANCA, anti-beta2 glycoprotein I antibody 검사는 모두 음성이었다. 엡스타인-바 바이러스, 거대세포바이러스, 매독,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항체에 대한 혈청 검사 및 갑상선기능 검사도 정상이었다. 뇌척수액(cerebrospinal fluid) 검사에서는 개방 압력 11.8 cmH2O, 적혈구 1/mm3 , 백혈구 0/mm3 , 단백질 41 mg/dL, 포도당 58 mg/dL (혈청 포도당 93 mg/dL), 알부민 17.2 mg/dL로 확인되었으며 단백세포 해리(albuminocytological dissociation)는 없었다.
뇌 컴퓨터단층촬영(computed tomography)은 정상이었고, 척추 자기공명영상(magnetic resonance imaging)에서는 역경추전만증 외 특이 소견은 없었다. 신경전도 검사(nerve conduction study, NCS)와 바늘 근전도 검사(electromyography) 는 운동신경에 더 두드러진 감각운동다발신경병증에 합당한 결과를 보였다(
Tables 1,
2). 양측 경골신경 체감각유발 전위(posterior tibial nerve somatosensory evoked potential)에서 양측 피질전위(cortical potential)의 지연이 있어 중추성 혹은 말초성의 전도 결함이 있음을 유추할 수 있었다. 또한 위축성 위염을 감별하기 위한 위내시경에서는 역류성 식도염과 홍반성/삼출성 위염만이 확인되었다.
환자의 아산화질소 흡입 병력, 혈액 검사, 전기생리학적 검사를 바탕으로 최종 진단은 아산화질소와 연관된 다발신경병증으로 결론지었다. 이에 환자에게 ‘해피-벌룬’ 흡입을 중단할 것을 교육하였고 하루에 1 mg의 cobamamide를 6일 간 투여한 후, 퇴원하면서 하루에 mecobalamin 1.5 mg을 복용하도록 지시하였다. 치료 3개월 후 환자의 근력은 거의 호전되었다. 환자는 증상이 호전된 후 5개월만에 다시 ‘해피-벌룬’을 흡입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2달 뒤, 본원에 처음 입원하였을 때와 같은 증상인 양측 발의 MRC 등급 4 이하의 근력 저하로 본원 외래를 방문하였다. 환자는 검사와 적극적인 치료를 거부하고 귀가하였다.
고찰
아산화질소에 의해 유발된 신경병증에 대한 기전은 아직까지 정확히 규명된 바 없지만, 두 가지 유력한 가설이 있다. 첫째, 아산화질소가 비타민 B
12를 비활성화시켜 신경독성을 유발하는 것이다[
4]. 비타민 B
12는 메싸이오닌 합성효소 (methionine synthase)의 보조인자(cofactor)로써 작용하는데 아산화질소는 비가역적 산화를 통해 비타민 B
12을 비활성화시켜 이 과정을 억제한다. 메싸이오닌이 감소되며 수초(myelin sheath) 인지질의 메틸화가 감소하고 결과적으로 신경계의 탈수초(demyelination)를 유발하게 된다. 이 가설에 의하면 아산화질소가 비타민 B
12를 직접적으로 비활성화시키므로 아산화질소 유발 신경병증에서는 비타민 B
12 결핍이 나타날 수 있다. 본 증례에서 혈청 비타민 B
12 농도는 정상이었지만 혈청 호모시스테인이나 소변 메틸말론산의 증가가 확인되어 비타민 B
12의 기능적인 결핍이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[
1,
3]. 비타민 B
12의 농도가 정상 범위 내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비타민 B
12 농도는 결합하는 단백질 분포에 따라 측정되어 아산화질소에 의해 비타민 B
12가 비활성화되더라도 결합하는 단백질 분획이 보존된다면 검사상 정상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[
5].
두 번째 가설은 아산화질소가 직접적으로 신경손상을 유발한다는 것이다[
6]. 이는 N-methyl-D-aspartate 수용체의 억제 및 노르아드레날린성 하행 신경 경로(noradrenergic descending nerve pathways)의 자극을 포함한 다양한 기전을 통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[
6,
7]. 아산화질소의 직접적인 신경 독성은 감각신경보다 운동신경 축삭(axon)에 더 두드러지고[
6,
7] 전기생리학적 검사상 상지보다 하지 원위부를 더 많이 침범[
4]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. 감각증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각 NCS 결과가 운동 NCS 결과에 비해 이상이 적게 나올 수 있는 이유는 젊은 성인에서 병전(pre-morbid) 감각 신경활동전위(sensory nerve action potential)가 상대적으로 높을 개연성과 작은 섬유 신경병증(small fiber neuropathy)에 대한 NCS의 낮은 민감성에 기인할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[
6,
7]. 결론적으로 위의 기전들을 통해 아산화질소의 남용은 척수와 말초신경의 축삭 및 수초의 손상을 함께 일으킬 수 있고 본 증례의 운동/감각 증상과 보행장애와 같은 임상 소견과 전기진단학적 이상 소견을 설명할 수 있다.
아산화질소에 의해 유발된 신경병증의 치료는 우선 아산 화질소 흡입을 중단하고 비타민 B
12를 보충하는 것인데, 치료 후 회복속도는 척수 손상 정도에 따라 다르므로[
2] 척수 손상이 발생하기 전에 신속하게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. 최근 한 연구는 아산화질소가 용량 의존성(dose dependent)이 강하고 용량이 높을수록 여성이 그 독성에 더 취약하다는 것을 보고하였다[
8]. 이는 장기간 동안 많은 양의 아산화 질소를 남용하는 것은 말초 및 중추신경계에 심각한 손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여 그 정도는 여성에서 더 심하다는 것을 제시한다. 따라서 본 증례와 같이 젊은 여성에서 아급성으로 운동신경 손상이 더 두드러진 말초신경병증에 대해 임상의들은 다양한 말초신경병의 원인 중 하나로서 아산화질소 남용의 가능성을 고려하고 필요 시 적극적인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. 아산화질소 남용으로 인한 신경병증 재발의 위험인자가 정확히 규명된 적은 없으나 약물 남용의 위험인자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강력한 가족의 지지와 인지-행동 치료, 심리 교육 등이 포함된 다각도적인 치료 프로그램이 약물 남용의 재발을 낮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[
9]. 따라서 본 증례에서처럼 아산화질소에 의한 신경병증의 재발된 경우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가족의 지원과 다각도적인 치료 프로그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. 또한 오락 목적의 ‘해피-벌룬’ 흡입은 아산화질소 중독을 유발하고 중독되면 이를 끊기 어려우므로 ‘해피-벌룬’ 사용자들에게 유발될 수 있는 신경학적 이상에 대한 경각심과 적극적인 사회적 규제가 필요하다.